목회자나 성도가 평생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기 공동체의 교회당을 건축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영광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특히 목회자들에게는 설교와 목양의 문제와 함께 이 교회건축이란 문제는 일생 중에 한번쯤은 부닥쳐야 하는 중요한 문제이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목회자들은 대개 건축에 대한 문외한으로서 건축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을 갖지 못한 것이 보통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올해 작년 연말과 올 봄에 나온 두 권의 교회건축에 관한 관련서(「교회건축의 이해」, 정시춘 저, 발언, 「새로운 교회건축, 이렇게 하라」이은석 저, 두란노서원)는 많은 목회자들의 관심이 되고 있다. 이 책들의 저자인 정시춘, 이은석 교수와 함께 교회당 건축에 대한 대담을 하였다.

주최 :  목회와 신학
대담진행 : 이정엽
때 : 2001년 6월 13일
곳 : 경희대 건축과




교회당은 단순히 건물이 아니라 교회 사역의 도구입니다. 두 분이 쓰신 책이 모두 교회당 건축에 관한 책이기는 하지만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진 것 같습니다. 먼저 각각의 책에 대한 소개와 차이점을 말씀해 주십시오.

이은석 : 제가 쓴 책은 평소 교회당 건축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바를 새로 지은 교회당들을 다루면서 그대로 풀어놓은 것입니다. 「목회와신학」의 ‘교회 건축의 모델을 본다’란 매뉴얼을 통해 3년 가까이 기고한 글들을 토대로 새롭게 정리하고 추가한 것입니다. 이에 반해서 정 교수님의 책은 교회건축을 역사적인 관점으로 체계적으로 쓰신 것입니다. 그래서 개신교 건축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개신교에만 한정되지 않고 카톨릭의 부분들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정시춘 : 저는 책의 구성을 보면서 이 교수님과 저의 건축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그대로 반영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 책은 교회건축의 문제를 논리적으로 파고 들어가 근본적인 문제를 풀어가려고 노력했고, 이 교수님의 책은 감각적으로 눈에 보이는 현상을 풀어주는 쪽에 관심을 갖고 쓰여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 책에는 사진이 참고자료로 들어가 있지만, 이 교수님의 책에는 사진 이미지가 주제가 되어 있습니다. 제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제가 교회건축의 본질적인 문제를 이론적으로 정립하고자 했다면, 이 교수님은 현상적인 것을 설명하며 풀어 가는 관점에서 썼다고 보여집니다.



정 교수님의 경우, 곧 완공될 총신대 100주년 기념 예배당을 비롯한 많은 교회를 설계하신 분으로 알려져 있고, 이 교수님은 물론 저희 「목회와신학」을 통해 계속 교회당 건축에 관한 글을 기고하고 계신데, 두 분의 교회 건축에 대한 지론을 들어 보고 싶습니다.

이은석 : 제가 보기에 정 교수님의 책에서 강조되는 것은 ‘교회당은 예술품이다’는 것입니다. 교회당은 기능과 아울러서 작품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교회당을 너무 평이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교회당은 형태도 있고, 상징적인 의미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그래서 카톨릭과 개신교의 교회건축을 연장선상에서 보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교회당을 너무 예술품으로 보고 너무 형태를 제어하면 안된다는 입장입니다. 고딕양식으로 짓기만 하면 예술품이 되는 줄로 알고 돈을 많이 들여 짓는데, 결과는 오히려 어설픈 건물이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개신교 교회당은 개신교의 청교도 정신을 근거로 하는 근검, 절약하는 교회당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현대 건축에서 추구해야 할 균형과 절제, 그리고 개신교적(protestantism) 윤리 안에서의 예술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시춘 : 저 또한 건축은 기능과 예술의 균형을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한국교회의 건축문화가 예술품으로서의 가치에 너무 무관심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강조하다 보니 예술성만 강조한다고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교회건축이 예술과 기능과 기술로서의 여러 속성들이 골고루 갖추어야 함을 강조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사실 책을 쓰면서 더욱 집중한 것은 교회건축의 본질적 문제이었으며, 교회와 건축이 어떻게 만날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건축이란 무엇인가?’,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하여, ‘교회건축의 역사는 지금 우리의 교회건축에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미래의 교회건축의 새로운 방향을 추구해 보았습니다. 또한 당장 교회건축을 앞둔 교회들을 위해 교회가 알고 준비해야할 교회건축의 실제적인 문제들을 책의 2부에서 다루어 보았습니다. 물론 평신도로서 교회론 같은 신학적인 이야기를 쓰는게 겁이 나서 몇 분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의 자문과 검토도 받았습니다. 제가 느끼는 그 동안의 한국교회 건축의 심각한 문제는 건축은 건축대로, 교회는 교회대로 자신들의 현실적이며 당장의 필요에 따라 교회당 건축의 문제를 다룸으로써 교회와 건축이 분리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건축이란 건축가와 목회자의 만남이어야 하며, 건축학과 신학의 만남이어야 한다고 결론적으로 말하고 싶었습니다.



오늘날의 한국교회 건축에 대해 진단을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한국교회 건축의 현실의 문제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해결되어야 할 문제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은석 : 제일 먼저 교회를 건축하시는 분들, 목사님들이나 교회의 지도자들이 갖고 있는 교회건축에 대한 개념이 문제라고 봅니다. 상당수의 현대교회 신자들이 교회 건축을 성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저는 이것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의를 제기해보고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 이후에 성전의 역할은 끝이 났습니다. 물론 교회당이 경건하고 존중되어야 할 공간이라는 의미에서는 성전이라고 표현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성도들이 성전이란 단어를 들으면 당장 구약의 성전을 연상함으로 갖게되는 교회건축에 대해 굳어진 사고가 문제입니다. 이런 경직성이 해소가 되지 않으면 오늘날의 교회건축은 솔로몬 성전의 거룩한 모양과 중세의 역사적 전통에만 연연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교회 건축은 물론이고 교회 갱신의 면에서 새로운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최우선으로 해결되어야 할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성전에 관한 고정관념이 기능적인 인식으로 전환되면, 비로소 교회 건축이 신자들이 사용하는 도구로써의 위치를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는 교회당이 항상 독립적으로 거대하게 존재해야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우리나라 교회의 70~80퍼센트가 소형교회이고, 특히 도시교회의 경우 아파트나 상가 건물 속의 한 켠에 비집고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실정에서 꼭 독립적인 건물을 교회 건축의 모델로 삼을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회당에 대한 생각이 바뀌면, 큰 건물 속에서도 교회를 위한 독립적인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지 작은 교회들에 대한 관심을 더 높여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정시춘 : 새로운 방법에 대한 이 교수님의 제안이 재미있습니다. 교회 건물이 시설이고 도구일 뿐이지 건물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에 저도 공감합니다. 오랫동안 교회당을 설계해 온 저로서도 이제까지의 교회당 건축이 많은 부분에서 잘못되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래서 교회 건축에 대한 지침이 필요하다 싶어서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만, 우리 사회의 건축에 대한 인식이 그동안 정립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지 않았나 합니다. 교회건축만이 아니라 일반 건축 자체도 이제 와서야 문화의 한 영역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습니다. 10, 20년 전까지만 해도 건축의 주된 목표는 이익창출이었습니다. 그런 건축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결국 교회당 건축에 대한 인식부족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 여유를 갖고 건축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가 지나서부터였는데, 그때에도 여전히 건축적인 요구를 충족시킬 만큼 여건이 갖추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교회가 올바른 건축을 추구해왔던 것이 아니라 교회건축이 교회성장을 뒤쫓아 왔던 것입니다. 교회가 성장하는 것에 급박했지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지 못했고. 늘어나는 교인을 수용할 수 있는 예배실 만이 관심의 대상이었을 뿐, 다른 시설들은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교회당 설계를 의뢰할 때, 예배당을 제외한 교육시설이나 친교시설, 봉사, 선교를 위한 시설들과 행정시설 등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요구가 거의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1,000명이나 2,000명 등 몇 명이 들어가는 예배당을 지어달라는 식의 요구가 유일한 건축지침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교회들이 교육이나 봉사나 교제 등이 아닌 예배당 자체에만 관심이 있었기에 교회당을 성전이란 용어로 부르기를 더 선호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10년 동안 많은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이 시기는 한국교회의 개혁논의와 함께 하는 것 같습니다. 성장이 정체되면서 그 원인에 대해 목회자들이 반성하기 시작하였고, 그들의 건축관도 변화되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예배당 외에도 교회의 다른 사역들을 위한 공간들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강력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교회건축에 대해 깨어있는 일부 제한된 교회의 분위기이고, 나머지 많은 교회들은 아직도 기존의 방법대로 지어지고 있습니다. 아직은 시간이 좀더 필요하리라 생각됩니다.

또한 많은 교회들이 건축이 교회의 사역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교회당 건축을 추진해 나가는 과정에도 많은 문제를 야기합니다. 교회당 건축을 위해서 재정을 준비하고 건축가를 선정하고 설계를 의뢰하는 과정에서 교회 건축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미비한 실정입니다.

이은석 : 일반 신자나 지도자들의 개념이 바뀌었다는 것은 일부이지만 사실입니다. 교회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나가보면, 변화가 눈에 보입니다. 목회자들이 책도 많이 보시고 정보도 빨리 받아들이시기 때문에 그런 강연이나 책들이 큰 파급효과를 가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교회지도자들이 말로는 기능적인 교회, 검소한 교회당을 이야기 하지만 내적으로는 여전히 기념비적이고 찬란한 교회당에 미련을 갖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교회설계를 위해 목회자들을 접하다보면, 처음에는 건축주를 잘 만났구나 싶다가도 나중에 가면 결국 다른 교회당보다 더 뚜렷이 드러나는 형태의 교회당을 기대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이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수는 없지만 목회자 개인의 경험이 강하게 개입되면, 낭비되는 요소를 줄이면서 세련되고 상징적인 교회당을 만들어야 하는 건축가의 역할이 불가능해지기도 합니다. 건축이란 것은 여러 가지 의견이 개입되다 보면, 결과물인 건물은 더욱 조잡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건축의 전문가인 건축가가 목회의 전문가인 목회자와 만나서 어떻게 하면 신뢰를 쌓을 수 있는가가 좋은 교회당을 짓는 관건입니다.

정시춘 : 건축가에게서 문제점을 찾자면 결국 한국건축이 좋은 교회당 건물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좋은 건축물을 보지 못했으니 비전문가인 교회들이 당연히 본능적인 장식물이나 기념비적인 건물을 기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순한 것이 훨씬 더 좋을 수 있음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렇기에 건축주로서의 교회에게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올바로 제시하는 것이 건축가들의 할 몫입니다. 언젠가 외국의 지원을 받는 한 기독교시설을 설계한 어느 건축가가 그 지원기관으로부터 파견된 감리자로부터 지금 짓고 있는 이 교회가 무슨 교단이며, 그 특성이 무엇이고 건축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느냐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거기에 대해 아무런 대답을 못했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개신교 안에서 교회당 건축과 관련된 교단의 차이가 별로 뚜렷해 보이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건축가가 그것을 이해했을 때 제대로 설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건축가들이 그런 노력을 들이지 않고서 교회건축도 일반 상업건물 짓듯 쉽게 처리해 버린 잘못도 있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짧은 건축기간, 건축가에 대한 낮은 신뢰도, 낮은 건축비라는 이유도 있지만, 교회당 건축은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한편, 건축이 전문화되어가고 있고, 건축주로부터 건축에 대한 충분한 지침이 주어지기만 하면 건축가의 창의력은 적합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건축주들이 -다시 말하면 우리의 교회들이- 자신들을 위해 필요한 건물이 어떤 것인지를 건축가에게 올바로 설명해 줄 준비가 되어있지 못하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교회당은 이런 것입니다”라고 건축가들에게 제시해 주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건축가들이 그것을 거꾸로 알아내어야 하는 입장입니다. 다만,여기서 오해되지 말아야 할 것은 교회가 건축가에게 요구하는 설계의 지침이 어떤 구체적인 형태나 공간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잘못하면 건축가의 창의력을 제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어, 바로 이점 또한 교회가 건축을 잘 이해해야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새로운 교회당들의 추세는 부속 공간들에 대한 비중이 커졌다는 것입니다. 이것과 관련해서 교회당이 기능적이어야 한다는 말씀에 대해서 좀더 설명해 주시죠.

정시춘 : 만일 한 목회자가 중심이 되어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면, 그분에게 분명히 어떤 비전이 있고, 그 비전을 따라 교회를 이루기 위한 목회적 활동들이 동반될 것입니다. 그럴 때 인적, 물적 도구나 목회적 프로그램들이 필요하듯이, 교회당도 그런 교회의 비전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도구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남의 건물에 세를 들어 있던 개척교회가 건물을 짓거나 기존 교회가 새로운 교회당을 짓거나 간에, 교회의 비전과 장기 마스터플랜을 이루기 위한 실행 프로그램에 적합하도록 교회당을 지어야 합니다. 저는 건축이 곧 환경과 도구라고 자주 말하는데, 교회당은 교회사역을 위한 환경이자 도구입니다. 그렇기에 교회당은 기능적이어야 합니다. 교회당이 스스로 예술품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만 지어져서는 안됩니다. 교회당이 예술품이어야 한다는 것은 교회의 사역이 그 예술품을 통해서 이루어질 때 동반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능성을 배제한 상태, 즉 교회가 무엇을 하느냐가 무시된 채 무조건 예술성을 드러내기 위해 지어지는 것은 교회 건축의 잘못된 목적입니다. 교회 목회자들이나 리더들이 그런 구분을 명확하게 했으면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교회의 기능성이 개발되는 것 이외에 목회자들이 바람직한 교회당을 건축하기 위해 고려해야할 점들에 대해서 말씀해주시죠.

이은석 : 저는 좀더 구체적으로 교회 건축의 개방성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얼마 전에 강남의 번잡한 거리를 걸어가다가 길거리에 조그마한 공원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 페밀리 레스토랑에서 제공한 공간인데,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건축용어로 쌈지공원 또는 포켓정원이라고 하는데, 교회가 실제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건축에 배려해야 할 공간이 이런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중세교회나 초기 우리나라의 교회는 그런 역할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중세교회를 보면 교회와 시청 사이에 광장이 있고, 그 광장에서 바로 교회로 들어갈 수 있게 했습니다. 교회가 모든 사람의 쉼터요, 오락의 공간이고 열려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당은 값비싼 성구나 비품이 많아서 열어두면 관리하기 힘들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닫혀 있습니다. 주중에 사용하지 않는 교회의 공간을 다른 사람들이 쉴 수 있도록 제공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식당들도 이익을 목적으로 자기네 공간을 개방해서 사람들을 끌려고 한다면, 교회는 당연히 이런 일을 해야 합니다. 이런 외부적인 공간이 없는 교회들은 카페와 같은 것들을 운영한다든지, 다른 여러 방법들이 있을 것입니다. 폐쇄적인 교회에서 열린 교회로 방향이 전환되어야 할 것입니다.

정시춘 : 1990년대 한국교회에 성장정체가 체감되면서 교회들이 비로소 지역사회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교회가 지역사회를 접촉할 것인가 하는 고민으로부터 커피숍과 같은 교회공간을 개방하는 열린 교회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좀더 근본적으로 들어가 생각하면, 주거환경에서 교회당의 역할은 중세교회에서처럼 여전히 중요합니다. 지금 제가 설계를 맡은 한 교회당도 다세대 주택들이 밀집되어 있는 입지로, 그 동네의 대부분의 건물들이 마당은 커녕 주차공간도 없어 골목길이 모두 주차장이 되어 버렸고 따라서 동네의 분위기는 숨막히는 환경입니다. 이러한 조밀한 주거단지 속에서 그래도 숨통을 열어 줄 만한 건축물은 교회당밖에 없습니다. 어느 동네나 교회당이 두,세 개 정도는 있는데, 교회마다 공간을 개방적으로 건축하여 쌈지공원이나 로비 또는 작은 문화공간을 제공한다면, 지역주민들의 삶에 유익이 있을 것입니다. 선진국과는 달리 주거생활 공간이나 직장생활 공간이 열악한 우리나라의 경우,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시설로 교회당이 제일 적합합니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지역선교에 이바지할 것이고, 지역주민의 삶을 윤택하게 할 것입니다.



지역사회와 겪는 교회건축의 갈등은 모든 교회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공공시설의 님비현상이 심한 우리나라의 실정에서 교회건축에 대한 반대나 잡음들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은 없을까요?

정시춘 : 최근에 어느 교회에서 교회당 설계자문을 부탁하여 가보았더니 목사님이 그 걱정을 하고 계시더군요. 교회가 어렵게 마련한 땅이라 교회당을 잘 짓고 싶은데, 지역주민들이 반발할 것이라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입니다. 사실 어느 동네에 교회당이 들어서면 주위의 집 값이 다 떨어지고, 주거생활이 나빠진다고 주민들이 다들 싫어한 것이 우리의 불행한 현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저 교회 집 짓나보자’하는 소리도 들린다고 목사님은 몹시 걱정을 하셨습니다.

그런 지역에 있는 목사님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지금부터라도 그 지역을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하시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먼저 지역주민들과 함께 나눔과 교제를 시작하면, 그들이 교회를 위해서 함께 할 수 있는 주민들이 될 것입니다. 교회당이라는 건축물을 단지 교회의 소유로만 생각하지 말고, 지역사회와 함께 할 수 있는 공공의 건축으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은석 : 교회를 연다는 것은 신자들의 입장에서는 친절을 베풀어서 우리 신자로 만들어야지 하는 그런 상업적인 전략이 깔려 있기도 한데, 좀더 거시적으로 봐야 합니다. 태양이나 공기나 비와 같은 일반은총처럼 주변 사람들이 교회당을 통해 평화를 얻는 것만으로도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교회가 단기적인 이익에 눈이 어두우면 또다시 관계가 어색해질 것입니다. 아무도 그 열린 교회를 열렸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손해를 볼 생각도 해야 합니다. 작은 교회들이 어려운 재정상태로 땅을 사서 그 중에 몇 등분을 내어놓는 것은 참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교회 건축에서도 그런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유럽의 수많은 교회들이 그렇게 했음에도 지금에 와서 교회에 대해 관심 갖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본다면, 열지도 않고서 배타적으로 건축하고 있는 우리라면 시간이 조금 지나면 외면당할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현대 건축가들은 교회의 이런 프로그램들을 담을만한 아이디어를 많이 갖고 있는 반면에 그것을 받아들일 교회의 준비가 없기에 시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교회건축의 무용론이나 무가치론을 펼치기도 합니다. 선교나 구제를 위한 교회의 관심보다 건물 짓는 것에 관심이 쏠리는 것에 대해 불만족스러워 합니다. 또 실제적으로 한국교회의 8,90년대에 불었던 건축의 붐은 사실 많은 부작용을 낳기도 했습니다. 건축가의 입장에서 교회건축이 간과될 수 없는 중요한 의미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정시춘 : 교회당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지금까지 우리교회들이 한정된 재정을 가지고 교회당을 짓는 데 전념하다보니까 정작 교회가 해야 될 본연의 사역을 등한시했다는 비판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한 교회공동체가 그들에게 적합한 교회당을 지으려면 그 교회 일년 예산의 다섯 배 정도가 필요합니다. 그런 재정이 투자되기 위해서는, 교회는 착공 전후 몇 년 동안 재정적인 압박을 받게 되고, 교회건축이라는 일에 대부분의 에너지를 소모하게 됩니다. 거기서 교회가 교회당을 위해서 존재하느냐 하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도 당연한 것입니다.

교회당 건축 자체를 목표로 생각할 때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러나 교회당 건축이 한 평의 공간이라도 교회의 사역을 촉진시키는 데 쓰이는 도구라면, 건축비는 버려지는 돈이 아니라 사역을 하기 위한 선한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비를 맞아가면서 예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무리하게 건축하는 것이 문제이지, 할 일을 하기 위해서 짓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은석 : 제가 프랑스에서 공부할 때에도 주택에 대한 문제는 없었어요. 10년 동안 집세가 5퍼센트 정도 인상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오니까 집을 분양받아야 된다는 압박감이 들더군요. 그 당시에 이상적인 생각만 하고 전세로만 살았다면 지금 후회를 많이 하겠죠. 일반적인 젊은 부부가 수입의 대부분을 주택마련에 쏟아 부어야 하듯이 교회들도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우리나라 실정에 교회의 기능을 충족시킬 만한 충분한 공간을 가지고 있는 교회는 몇 안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균형의 문제입니다. 교회가 해야 할 본질적인 사역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장기적으로 교회건축을 추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당을 건축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교회들을 보면 부흥에 대한 믿음 때문인지는 몰라도 필요 이상으로 무리하게 일을 벌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시춘 : 교회 건축을 무리하게 만드는 요소 중에 교회들의 경쟁도 문제가 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회음향 때문에 교회마다 경쟁이 붙었습니다. 어느 교회는 이 회사의 음향기기를 썼다 하면서 비싼 비용을 들여 교회음향기기를 교체하는 일들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습니다. 또 최근에는 영상시설이 중요하다고 해서 일반 스크린도 아닌 LCD 스크린을 많이 찾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영상시설에 대해 엄청난 돈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또 무대조명, 파이프 오르겐 등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설에 투자를 합니다. 공간 자체가 파이프 오르겐을 울려줄 수 있는 공간이 아님에도 무리한 시설투자가 되곤합니다. 이런 것들이 교회건축이 무익하다는 이야기를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아까 이 교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균형을 찾아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건축이란 것이 원래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한 것으로, 그 화려하고 웅장한 중세 카톨릭성당들도 당시의 강력한 교회와 교황의 교권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지어졌습니다. 사람이 권력을 가지면 그것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당 건축과 수양관 건축에 이런 부정적인 요소들이 없는지 개혁교회가 깊이 한번 반문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카톨릭 교회당은 권위적이고, 성례전 중심적이고 개신교 교회당은 회중 중심적이고 설교 중심적인 특성을 갖습니다. 그래서 교회당 건축에 있어서 카톨릭이 개신교의 교회건축에 비해 좀 더 앞서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카톨릭과 개신교의 교회건축에 있어서 차이점은 어떤 것입니까?

정시춘 : 카톨릭교회의 미사의식 자체는 성례전 중심이어서 말씀중심인 개신교와는 다른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흔히들 카톨릭이 더 권위적이라고들 알고 있는데, 사실은 상당히 개방적인 것 같습니다. 교회 자체의 미사 이외의 다른 활동은 개신교와 거의 다른 부분이 없을 정도입니다. 상당히 자유로운 활동들을 하고 있고, 교제나 교육이나 봉사라는 교회의 본질의 다른 부분에서는 카톨릭도 상당히 개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축에 있어서의 문화의식은 오히려 카톨릭이 더 높은 것 같습니다.

이은석 : 오늘날의 교회건축이 중세 카톨릭의 요소를 많이 답습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예를 들자면 예배당의 장축이 길게 되어 있는 것이 카톨릭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 개신교회는 말씀이 전달되는 오디토리움의 형식으로 그 평면이 달라져야 합니다.

의식 중심적인 공간일 경우에는 항상 과장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건물은 길이나 높이, 창문의 형태들이 과장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더욱 찬란한 빛이 들어오도록 하기 위해 실내를 더 어둡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개신교 교회당은 의도적으로 성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공간은 아닙니다. 오히려 말씀을 전하고 듣는 분들이 자유롭게 교제할 수 있는 분위기를 위해서는 분명히 평면형식은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개신교 교회의 본당의 형식을 보면, 카톨릭의 미사에 어울릴 정도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어떤 교회에 들어가 보면 창문은 있는데, 커튼을 쳐 놓았습니다. 건축적인 외형과 내부에서 사용하는 용도가 충돌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개신교 예배당에는 밖을 내다보는 창은 별로 필요없습니다. 조명으로서의 창은 필요하지만, 전경을 바라보는 의미에서의 창문은 필요없습니다. 음악당이나 극장처럼 교회당도 오디토리움의 구조로 설계하는 것이 더욱 기능적일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당이라 하면 일단 창문이 올라가다가 끝이 뾰족해지는 첨두아치가 벽면에 쭉 도열된 건물을 연상하면서 기능과는 상관없이 창문을 뚫어놓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현대의 개신교회가 필요한 공간을 전혀 지원해 주지 못하는 외형이 되고 맙니다. 현대 개신교회당은 빛을 컨트롤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합니다. 가능하면 말씀을 전하는 사람에게 집중하게 하고, 청중과 설교자가 교류할 수 있도록 자연광이 들어올 수 있도록 조명 중심으로 창문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정시춘 : 개신교 목회자가 건축에 대해 배울 기회가 없는 것도 문제이자 차이입니다. 카톨릭신학대학에는 교양과정으로 교회예술이나 교회건축 같은 과목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데, 개신교의 신학교들에도 교양과정이나 실천신학의 한 부분으로 그러한 교과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은석 : 신부님들의 경우에는 독신이어서 그런지 여가생활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은 건축예술이나 예술을 접할 기회가 많습니다. 그러나 개신교 목회자들은 사역을 하면서 가족도 돌봐야 하기에 안목을 넓힐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목회자들이 그런 여유와 안목이 없다면 신자들을 통해서 충족시켜야 할 것입니다. 또 하나 개신교가 그런 문화적인 면에서 보수적 경향을 띕니다. 종교음악은 활성화된 반면에 그동안 종교미술을 우상시 되었습니다.

정시춘 : 그것이 종교개혁에 잇달아 이루어진 성상파괴운동 같은 조치들의 결과이었습니다. 결국 우상숭배를 우려한 개신교들의 이러한 조치들은 시각예술을 경원시하게 되었고, 건축 속에서 예술성과 상징성을 배제시켰습니다. 그러나 현대 교회는 시각예술의 심리적 효과를 인정하고 있으며, 교회건축도 교회사역을 돕는 도구로서의 예술성을 포함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은석 : 그것 때문에 어떤 교회는 아직 십자가도 못 걸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십자가를 거는 것이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단적인 예로 드는 것입니다. 시각적인 디자인 형상을 거는 것에 대해 아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아름다운 찬양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듯이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통해서도 동일한 임재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신학적으로 예민한 문제라고 여겨지지만 평신도의 입장에서 중요하게 다가오는 부분입니다.



교회건축의 문제는 결국 사람의 문제라고 귀결되는데, 지금까지의 좌담을 정리하면서 교회건축을 앞두고 있는 교회들을 위한 실질적인 제안들을 부탁드립니다.

정시춘 : 저는 한국사회나 한국교회가 건축이나 예술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건축위원들의 교회건축에 대한 인식이 공부와 훈련을 통해 미리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건축위원들이 건축의 과정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흔히들 교회건축위원회를 구성할 때보면, 대부분 직업상 건축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교인들을 우선적으로 위원으로 위촉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여 오히려 교회건축에 해가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건축에는 비전문가라도 건축위원회를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분들이 더욱 적합합니다. 교회건축에 대해서는 좋은 건축가나 경험자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건축에 관한 다양한 준비모임을 통해 훈련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회건축을 추진할 때, 교회가 미리 충분한 시간을 두고 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국에서 발간된 한 교회건축관련 서적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충분한 준비였습니다. 사전에 교회건축에 대한 세밀한 지침들을 만들고 좋은 건축가를 만나 그를 신뢰하고 착실히 실행해 나간다면 훌륭한 교회당을 건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은석 : 목회자 개인이 경험한 것은 때론 아주 편협한 것일 수 있습니다. 실례로 작은 교회에서는 큰 교회당의 모든 것을 교본 삼아 그대로 지어달라는 요청들이 있습니다. 또 목사님이 미국에 갔다왔더니 이런 교회당이 좋더라 하면서 그대로 지어줄 것을 요구하시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전원주택 열풍이 불고 있는데, 그 사람들이 미국에나 있는 언덕 위의 하얀 집을 지으면 자신도 낭만적인 미국인처럼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주택이 겨울에는 더 춥고, 여름에는 더 더우며, 같은 재료이지만 빨리 낡는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낭만만을 추구하다가 그런 실수를 범하고 있습니다. 교회도 이 부분에서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푸른 잔디 위에 건물 하나 하나가 뚝뚝 떨어져 있는 미국식의 교회를 한국에서는 적용할 수 없습니다. 아파트나 오피스 같은 건물은 그렇게 입지에 영향을 받지 않지만, 교회당은 그 입지에 따라 건축양식이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먼저 건축주가 되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선입견을 배제하시고 건축가를 만나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건축가를 선정하기까지는 아주 고심을 하면서 선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단 건축가가 선정되면 그분들을 신뢰하고 위임해야 합니다. 흔히들 좋은 요소들만 다 모아놓으면 제일 좋은 예배당이 나올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렇게 되면 오히려 추한 괴물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절대로 아름답지 않습니다.

정시춘 : 저는 요즈음처럼 많은 사람들이 교회건축에 대해 걱정하는 한 희망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지어온 대부분의 건축물의 수명이 통상 20~30년이라고 볼 때, 한국교회가 급성장하면서 필요에 따라 준비 없이 마구 지었던 교회건물들이 불행히도 이제 헐리고 새롭게 지어져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사실 현존하는 대부분의 교회당들은 7, 80년대의 고도경제성장과 함께 했던 교회성장기에 당장 교인들을 수용할 공간 마련을 위해 특성도 없고 부실하게 지어진 건물들입니다. 이제 이런 건물들이 수명을 다해 허물어지고, 새로운 교회당을 지어야 하는 지금이 한국교회의 건축에 있어 재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는 과거처럼 그렇게 마구 짓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한 한국교회 내의 개혁 움직임과 함께 새로운 목회에 대한 활발한 논의들이 있는데, 여기에 건축가들의 헌신적인 수고가 함께 동반된다면 아마 좋은 교회 건축물들이 나올 것이며, 교회건축은 미래교회의 사역을 위한 훌륭한 환경과 도구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장시간 좌담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