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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땅과 옛길의 현대적 회복
원주 만종 감리교회는 우리시대 교회건축의 제반문제와 한계를 극복하려는 하나의 노력으로 평가되어질 수 있다. 인위적으로 신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건축물을 활용하였던 이교적 습성은 언제나 권위적인 대칭의 미학과 직선 축을 선택한다. 그러나 여기 만종교회당의 접근방식에서 보면, 직선 축에 의해 강조되는 기념적 효과보다는 경사진 대지에 잘 조화되는 건물배치와 평화로운 한국적 길의 회복을 위해 힘쓰고 있다.

만종감리교회 내외부 전경 / 출처: 아키처치 교회탐방DB (http://archichurch.com/4111)
우리가 부드러운 돌축대에 의해 유도되는 경사로를 오르다 보면 맞은 편에 시각적으로 부딪히는 종집을 보게 되고, 다시 그 수직적 박스와 연결된 수평의 콘크리트 담에 의해 본당으로의 진입을 지시받는다. 그러나 이 벽은 단정적으로 한 방향을 강요하는 벽면이라기보다는 중간중간 끊기고 뚫린, 방향성에 있어서는 약간 산만하기까지한 벽이다. 건축가는 바로 이것이 한국성의 여유라고 주장한다.
이는 강한 의도, 경제성, 그리고 능률이라는 개념으로 축약되는 오늘날의 도시적 교회의 개발모델과는 커다란 차이를 갖는다. 즉 교회당을 건설함에 있어 수많은 신도들이 동시에 빠른 속도로 오고가는 기능적 효과보다, 오히려 교회당으로의 접근과정에서 사색과 묵상의 기회를 갖는 여유로움에 대한 배려를 회복하려 한다는 의도이다. 사실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문화를 살펴보면, 한국의 문화전반이 상실한 여유와 은근함의 가치를 교회도 덩달아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교회건축의 최우선적 목표를 다수의 객석과 주차장의 확보라는 효율성에만 맞추고 있다는 것을 보면 증명된다.
그러나 건축가 백문기의 만종교회는 우리나라 시골마을이나 도시 속의 달동네에서 비롯되는 길의 특징을 그의 건축 외부공간에서 가지고 있다. 올라섰다가 다시 내려가고 돌아서 들어가는 길, 그 길 주변으로 흩어져 배치된 건물들, 동시에 여러 방향으로 열려있는 개구부의 자유분방함, 그리고 그 틈 사이로 언뜻 보이거나 고즈넉하게 노출된 담 너머 부속건물이나 마을과의 시각적 관계성 같은 것이다. 연속되는 한 개의 선으로 연결된 길이 아니고 묘하게 흩어지기도 중첩되기도 하는 효과가 바로 우리 전통적 길의 여유로운 특징이라는 주장이다. 비록 이 교회의 영역이 넓지는 않으나 목사관, 야외예배처, 교육관, 그리고 본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건물이 여러 채를 이루며 옹기종기 모여있다. 그래서 이 예배당은 권위적이지 않고 우리가 오래전 시골교회에서 느꼈던 공간적 풍요를 경험할 수 있다.
벙어리 ‘종집’의 상징성
누구나가 만종교회를 방문하게 되면 첫눈에 이 예배당이 검소하게 건설되었음을 눈치채게 된다. 우리시대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동일하게 드러나는 한계들처럼 건축도 이미 돈에 더렵혀지고 권력에 노예화되어 있다. 건물의 실현이 건축가의 참신한 역량이나 뜨거운 노력의 결과물로 평가되기보다는 거대한 자본의 움직임에 철저히 조종되고 있다는 안타까운 현실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이제는 다만 물질만능의 신, 맘몬의 잔인성 앞에서 미세하게나마 외칠 소리조차 잃어버린 인간의 불능과 왜소함이 원망스러울 뿐….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원주에 있는 가난한 이 시골교회를 방문하면서 우리는 황금전쟁의 폐허 위에 세워진 진실하고 소박한 건축의 드문 가치를 찾을 수 있다.
건축가 백문기는 이렇게 말한다. “젊은이들과 아낙네들은 이 교회당을 아주 좋아합니다. 하지만 4, 50 대의 중년 신도들은 별로 달갑지 않게 봅니다. 교회가 마치 창고건물 같아 보인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나는 이 남자 분들의 평가를 듣고서 혼자서 흐뭇해했습니다. 사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예배당을 오페라처럼 화려하게 짓고 있습니까? … 그러나 저는 신앙의 가치가 친교보다는 믿음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설계한 예배당의 공간 속에 믿음의 가치가 담겨져 있다면 그 자체가 이미 충분히 행복한 일이지요.”
일반적인 교회당 건축이 추구하는 따스하고 평화로운 공간의 가치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런지는 모르나, 건축가의 신앙 속에는 그가 확신하는 건축에 대한 소망이 진하게 녹아 있다. 우선 그는 예배당 전체를 지배하는 재료로 거푸집을 그대로 떼어낸 소박한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상당한 면적의 벽을 저렴한 건축재료인 블록으로 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가는 이러한 재료의 거칠음을 다양한 빛의 연출과 색채의 도입이라는 가장 경제적인 해결책으로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특히 ‘종탑’이 아닌 ‘종집’의 개념으로 교회당의 수직적 요소를 삼은 것은 건축에 대한 신념과 종교적 신앙이 함께 어우러져 나타나는 백문기 건축 상징성의 클라이맥스인 셈이다. 일반 교회건축이 제시하지 못하는 강한 기독교적 상징성이 그의 ‘종집 개념’에는 의미심장하게 담겨져 있다. 흔한 종탑에서 울리는 종소리에 대한 기대가 멀리 영롱하게 울려 퍼지는 파장에 있다면, 이같은 박스 속의 종집에서 기대하는 소리는 종이 매달린 집 속에 갇혀서 ‘웅웅’대는 탁하고 둔한 파동에 있다고 건축가는 설명한다.
어쩌면 교회의 신도들이 기대해 온 맑은 소리가 아닐런지는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 사치스러운 교제보다는, 오히려 벙어리처럼 소리가 모자라서 몸과 삶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기독교적 믿음의 본질을 건축적 언어로 형상화 한 노력이 이 종집의 개념에는 각인되어 있다. 사실 이 벙어리 종집처럼 우리시대의 한국교회는 멀리 울리는 아름다운 종소리를 다듬어 만들기보다는 눈앞의 작은 실천을 우선시 할 때다. 마치 몸으로 인간들의 아픔을 체휼하신 말씀이 육신이 되어오신 그리스도의 삶처럼
이은석 | 199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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