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작품 DB
교회작품들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살펴보세요.
| 지역: | 제주 |
|---|---|
| 대지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강정동 4400-4 |
| 지하층수: | 0층 |
| 지상층수: | 3층 |
| 대지면적(m2): | 01099 |
| 건축면적(m2): | 00570 |
| 연면적(m2): | 00821 |
| 설계년도: | 1997 |
| 준공년도: | 1998 |
사진정보
교회정보
- 교회명: 강정교회
- 소속교단: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 담임목사: 박희식 목사
- 홈페이지: http://www.gjpch.com/
업체정보
- 설계업체: 무회건축(김재관)
- 시공업체: 신일종합건설(주)
작품해설
굴무기나무 이야기굴
제주도의 남쪽인 서귀포에 있는 예배당이다.
50주년을 기념하여 건축된 이 교회의 입구에는 아주 오래된 굴무기 나무가 한 그루 있다. 사람들이 이 땅을 기억하고 있는 상징이었던 그 나무처럼 오래 전부터이거나 애초부터 있어왔던 교회로 존재하길 바랬다. 어느 땅이든 그곳에 꼭 맞는 집이 있을 것이며 그 해답은 하나일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나는 감히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집을 설계하고 싶다고 그곳 교인들에게 말했었다. 신께 기도하는 예배처소이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그동안 사용해왔던 예배당이 있었다. 오랜 세월 탓인지 교회의 마루바닥은 곳곳이 낡고 합판으로 만들어진 천정은 비로 얼룩져 있었지만 나에게는 그저 아름다음으로 다가왔었다. 그 조용한 감동은 나의 설계가 이보다 더 낫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기도 하였다. 그 초라한 예배당이 아름답게 느껴졌던 것은 단순히 형태 때문이거나 육안으로 인식되는 것들에 의한 것만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 교회가 주변의 어린이들에게 좋은 놀이터가 되었다거나 젊은이들이 밤낮으로 머물러 건물을 관리하는데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속으로 흐뭇하다. 난 오히려 이 교회에 하릴없이도, 목적이 없어도, 심심해서라도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가 되길 바란다.
교회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박람회 팸플릿 발문 - 김재관 / 무회건축)
하늘 오름 이야기
제주는 오름이다.
제주는 대륙이다. 제주는 섬이 아니다.
아니 섬은 없다.
삼다(三多), 삼무(三無), 4·3사건, 정낭, 물허벅, 고삳, 똥돼지, 현무암…등의 어휘들이 그 동안 제주라는 장소를 설명해왔다.
때로는 주인의 허락없이 도굴되어 야시장에서 제 값을 못 받고 흥정되는 물건들처럼, 때로는 제 뜻도 모른 체 이것이 제주라고 제멋대로 간판 노릇을 해 왔던 것은 아닐까?
그것도 오랫동안 말이다.
부분을 전체인 듯 당당하게 말하는 것조차도 표현의 자유에 해당할는지 모르지만 연금술이 공인될 때까지는 양은을 황금이라 우기는 행위는 유보해야 한다. 형태가 분명하지 않거나 쉽게 느껴지지 않지만, 아른거리듯 전체를 포괄하고 있는 것이 분명히 실존하는데, 나는 그것을 제주성이라 부른다. 이것은 전혀 추상적이지 않으며 너무나 구체적인 대상이기에 오히려 인지되지 않지만 결코 이 시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 분리될 수 없는 실존적 문화이다. 그러므로 시간이라는 저울과 함께 이것을 관통하지 않는 제주에 관한 발언은 허구이거나 궤변이거나 사기다. 근본적인 제주성을 언급하고자 한다면 새로운 틀을 가진 사고와 탐구의 방법이 구사되어야 하며 습관처럼 인용된 해괴한 언어들은 국어사전에서 정의가 수정되기 이전까지는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정직하다.
제주성이라는 대상에 대하여 강정교회라는 건축적 장치를 통해 2년 동안 말해왔고 이제 끝마쳐야한다.
나에게 일감을 주신 분들은 그간 나로 인해 참 괴로워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듭을 지을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면 탄복할 만한 강정교회 사람들의 인내의 결과이거나 본인의 강요된 화술때문은 아니다..... (SPACE 9810 - 김재관 / 무회건축)
강정교회 설계소묘
이 교회는 제주도 서귀포 부근의 강정마을에 있으며, 1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이는 예배처소이다. 마을은 북쪽의 한라산을 배경으로 중산간 도로의 바다와 만나는 곳에 위치하며, 동네의 중심부가 교회의 장소이다. 부지는 입구가 좁은 장방형으로 바다를 향해 약간의 경사를 이루는 나지대로서, 이 땅을 상징해 왓던 굴무기나무가 도로와 만나는 입구에 있다.
건물의 배치는 대지를 횡단하는 도시계획예정도로를 경계로 하여 주차장을 수용하고 요구된 규모의 시설을 나열하면서 결정된다. 도로에 의해 동강난 남쪽의 잔여공지는 당분간 마당으로 사용될 것이며, 지금은 잔디가 자라나고 있다.
대부분 그렇듯 이 고장의 1,000여 가호의 집들은 올래(흔히 집 앞의 "길"을 일컽는 제주방언) 에 의해 서로 연결, 소통되고 있는데, 교회가 1,001번째 쯤으로 편입되면서 올래의 범위는 다시 확장되게 된다. 환기와 빗물의 처리방식에서부터 건물의 주요 프로그램으로 도입된 올래가 기존의 그것과 다른 것이 있다면 외부로부터 시작되어 건물을 통과하기도 하고 2,3층과 지붕으로 연결되며 높낮이를 달리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렇더라도 형식과 기능을 상실하지 않는다.
이러한 순환체계는 또다른 서로를 이으면서 구조와 결합하고 건물의 구성에 긴밀히 작용된다. 또한 문화의 동질성을 암시함으로써 접근을 용이하게 하고 폐쇄적 형태로 인한 일반적 예측을 반전시키는 요긴한 장치이기도 한다.
건축적인 올래의 시작은 콘크리트 장벽에 있는 제한된 개구부를 통과하면서 속성은 변화하게 된다. 분기점은 필로티 형식의 데크와 외부광장을 둠으로써 커뮤니티의 장소로 이용되며 각각은 열주,십자가 종탑에 의해 예배의 공간으로 유도된다. 현관과 본당이 만나는 곳에서까지 벽체를 통해 물리적 변화를 시도하려는 수법은 반전을 통한 위계의 설정과 이로 인한 종교적으로 고양된 마음을 기대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두 가지 형식의 구조체계는 공간의 성질과 축조의 용이함을 반영하며 재료사용의 기준이 되고 있기도 하는데, 이는 간결한 전체적 구성과 함께 내외부의 질감을 일치시킴으로써 합목적성과 종교적 순수성을 내포하고자 함이다.
천창을 통한 빛은 콘크리트 벽에 의해 보호되며, 소리는 다시 하늘로 향한다.
나적처럼 여겨지던 공사비는 나와 집주인들이 장식적 요소에 대한 유혹을 자제하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으며 이곳에서의 콘크리트는 건축적 성립의 최소단위를 말한다.
어떤 이는 이 집을 마법의 성이라 부르고 혹은 정신병원, 감옥, 방카, 밤섬 같다고도 한다. 방주와 같다고 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지만 나는 "오름"이라 부르고 싶다. "하늘오름"이라고....
(월간 C3 Korea 0105 No 201.2001 - 김재관 / 무회건축)
콘크리트 이야기
주도 남단 서귀포의 한 시골마을에 조금은 과분하다 싶은 하나의 건물이 탄생하기까지는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남들과는 다른, 결코 평범하지 않은 교회 건물을 갖고 싶다는 약간의 교만섞인 마음이 이 건물이 서게 된 동기가 되었다. 물론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특별한 신앙적 고백이 있으나 그 점은 여기서 언급하지 않겠다.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노출콘크리트 공법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본 교회 성도들에게 대단한 자부심과 애착을 갖게 하였다. 물론 모든 성도들이 전적인 호감과 만족감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없으나 , 노출콘크리트 공법으로 교회건축을 시작할 때의 의욕과 우려를 생각한다면 대단한 변혁이라 할 수 있다.
이 교회의 노출콘크리트 이야기는 나와 무회건축연구소의 김재관 소장과의 첫 만남에서 비롯된다. 건축설계를 위한 첫미팅을 위해 제주에 내려온 김소장을 중문관광단지에서 만나 교회로 오는 길에 공사가 중단된 어느 연립주택의 현장을 지나게 되었는데, 방치되어 있는 건물의 콘크리트 벽면을 가리키며 "콘크리트는 자연 그 자체이며, 가장 아름답고 솔직한 소재"라고 설명하는 그이 말에 조금 당황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눈에 비쳐진 것은 공사가 중단된 흉물스러운 콘크리트 더미 밖에 어떤 아름다운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가식되지 않은 순수함에 대한 공감대는 있었으나 "아름답다, 좋다"는 느낌은 전혀 가질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이러한 선입견이 노출콘크리트공법에 대한 지속적인 우려로 작용했는지 모르겠다. 설계를 위한 첫미팅에서 이러한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다. 벽체를 노출콘크리트로 한다는 그의 설명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갑자기 공사장의 거친 콘크리트 벽면이 연상되었다. 이 공법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던 나로서는 당연한 것이었지만 거푸집을 코팅합판을 사용하여 시공하면 벽면이 매끄럽고 "대리석(?)"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그의 설명에 어느정도 수긍하면서도 여전히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이후 건축 설명회 등을 거치면서 교인들을 설득하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의 수긍과 특별한 건물, 즉 평범하지 않은 건물을 원하는 젊은층들의 바람이 맞물려지면서 모험(?)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건물에 대한 내 자신의 개인적인 개념은 "아늑하고 깔끔하게 정돈된, 대리석이나 타일, 페인트 등으로 치장되어진" 것이었고 콘크리트면은 당연히 가리워지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김 소장의 설득작업으로 공간개념이나 분위기에 대해서는 감이 오기 시작했으나 "아름다운" 성전을 위하는 교인들의 정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로 인해 계속적으로 "황량함과 썰렁함"에 대한 염려를 떨쳐버릴 수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설계자와 교회의 의견이 대립되는 부분들도 적잖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든다면 내부공간만큼은 깔끔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는 우리의 강한 주장도 있었으나, 설계자의 뚜렷한 주관과 밀어붙이기에 번번히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처음으로 노출콘크리트 벽면의 거푸집이 떼어지던 날, 교인들의 실망스러운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물론 나의 마음에도 구멍이 뚫려 버렸다. 구멍이 난 벽면, 자갈과 모랫발이 보이는 부분들... 이 공법을 지속할 것인가하는 오랜 격론이 지나간 후에야 다시 공사가 재개되었고 여러 우여곡절 끝에 완공을 보게 되었다. 이 건물을 여전히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 끝난 거예요? 페인트칠 안합니까?" 가끔씩 묻는 이들이 있다. 물론 대부분 외부인들이지만... 우리 교인들의 대부분은 이미 노출콘크리트 공법에 '세뇌' 당해버렸다. 많은 이들이 콘크리트 예찬론자가 되었고 건축에 대한 심미안을 갖게 되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나의 안사람이다. 처음에는 가장 우려하고 반대하던 사람 중의 하나였던 안사람이 어느 날 이런 고백을 했다.
"교회건축을 한번 더 할 기회가 있다면 이 공법으로 다시 하면 좋겠다"는......
모든 건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은 이미 너무 높아져 버렸다. 이제는 치장되어진 어떤 건물을 봐도 눈에 차지 않는다. ‘우리 건물’이라는 주관적인 생각 때문일까? 콘크리트면을 보노라면 바라볼수록 좋아지는 순수한 자연미에 끌리게 되고 거기에서 발산되는 어떤 힘에 압도당하고 만다. 마치 화장하지 않은 여인의 깨끗하고 순수한 얼굴과 같다고 할까.. .마지막까지 의구심을 갖게 했던 내부 벽면에 대한 우려도 어느 시절엔가 사라져 버렸다. 아무도 교회당 내부에 들어와 노출되어있는 콘크리트 벽면에 대해 "왜?"라고 묻는 이들이 없다. 그저 경이스러운 눈빛으로 "참 좋다!"를 연발할 뿐이다. 이 모든 것을 차지하고라도 이번 건축을 통해 얻게된 가장 소중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관계"였다. 설계로부터 시공, 감리에 이르는 과정에서 이미 한가족이 되어버린 설계자와 시공자들, 비록 갈등과 마찰과 여러 힘든 일들이 있었을 지라도 그것마저 소중하게 느껴지는 새로운 인간관계였다. 건축은 어떤 기교나 가식이 아닌 가장 솔직하고 아름다운 과정이요, 관계인 것을... (월간 C3 Korea 0105 No 201.2001 - 최공칠 / 강정교회 목사)
무채색의 건축
필자가 강정교회를 처음 대한 것은 6월 하순경의 일이었다. 서귀포시에서 주최하는 ‘칠십리건축대상’선정을 위한 작품후보로 심사의뢰를 받은 때이다. 처음에는 도면만의 대면이었다. 그러나 완성된 건물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주최측의 방침에 따라 후보에서 제외되어 심사까지는 가지 못하였다. 이때에 도면을 통하여 받은 첫인상은 제주건축가의 작품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왜 그런 인상을 받았는지 뚜렷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제주건축가가 흔히 고민하기 마련인 지붕부분을 대담하게 처리하고 있고 제주에는 흔치않은 노출콘크리트를 사용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인상들이 제주에서 흔히 보는 건축과는 다른 인상을 주었음이 명백하다.
설계자인 김재관 씨의 이름조차 생소했다. 그러나 사무소의 이름을 보고는 어떤 인물일까 하는 호기심이 인 것도 그 당시 인상 중의 하나이다. ‘무회無懷’라 하니, 마음을 비우고 건축을 한다(?)라는 것이었다.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건물이 완성되면 답사를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비평을 쓰게 되면서 그 동기는 의외로 일찍 찾아왔다.
강정교회에 대한 비평을 하면서 굳이 제주건축의 지역성과 연결시켜 논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다. 설계자 김재관 씨가 제주를 안 지도, 또 이해하고 있는 정도도 2년이란 시간을 능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적인 맥락을 고려하는 일은 건축가로서 기본적인 사항이 되겠으나 충분하지않은 성찰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바람직한 결과를 얻기란 불가능하다. 또한 현재 지역성을 논하여 명쾌한 해답들 제시한 이는 없다. 따라서 지역성을 고려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강정교회를 평하고자 한다. 서귀포시 강정동은 서귀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편입된 지역으로서 서귀포 시내와는 6,7㎞나 떨어져 있는 그리 크지 않은 마을이다. 이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마을의 중간쯤에서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역시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십자가를 올린 탑이다. 그렇다고 마을 전체에 군림하는 듯한 그런 위세는 아니다. 그만큼 크지 않은 교회건물인 것이다.
건물은 부지내에서 중간쯤에 자리잡고 있다. 주차장을 둔 진입부분과 아무런 시설을 두지 않아 더욱 넓게 느껴지는 잔디마당인 남쪽의 넓은 마당 사이에 위치한다. 진입부의 좌측에 원통기둥 7개를 세워 방문자의 발길을 자연스레 입구까지 인도하고 있다. 기도를 위해 방문한 사람은 입구에 들어서면 우측으로 보이는 직선계단을 올려다보게 되는데, 그 시선을 받쳐주는 종탑이 인상적이다. 이 계단을 올라 좌측으로 돌아서면 ‘교제의 마당’으로 명명된 넓은 데크가 있고, 그곳에서 회중석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마루바닥의 홀과 정면에 양쪽으로 출입문이 있는 벽면이 나오고, 그 문을 열면 바로 앞에 둥근 스크린이 서있다. 이 스크린을 돌아 들어가서 제단과 회중석 내부의 전부가 보이게 된다.
지금 필자는 교회의 중심공간인 회중석까지의 진입경로에 대하여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강정교회의 진입은 회중석까지의 과정이 의도적으로 장황하게 처리되어 있다. 이것은 일반적인 교회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서구 고딕교회의 경우도 내부나 외부의 공간처리가 장황하지는 않다. 현재의 교회건축도 마찬가지이다. 다시 말해 강정교회의 진입방식은 어쩌면 한국의 전통적인 진입방식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진입동선 자체를 길게 하는 것이나, 몇 차례를 돌아서 가게 하는 것이나, 돌아들게 하는 곳에는 시선이나 동선의 끝을 맺어주는 결절점으로서의 장치들을 만들어 주는 것이나, 상층의 슬래브 밑을 통과하게 하는 것 등이 우리의 정서에 익숙한 그것이다. 이러한 의도들은 오히려 우리의 전통사찰에서 흔히 보는 것이다. 무회를 생각하는 건축가가 교회를 설계하면서 우리의 전통건축을 의식한 것일까. 아무튼 한국 건축을 전공하는 필자로서는 의외의 장소에서 새삼 우리의 건축을 생각하게 되어 반갑기까지 한 것이 솔직한 심사이다.
강정교회의 도면과 실제 돌아본 건물의 주변을 비교해 보면, 외관상으로는 폐쇄적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건물 사면 어디서나 출입이 가능하게 되어 있다. 이러한 의도는 쉽게 드러나 보이지 않는 출입개구부의 배치관계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안과 밖을 구분하지 않고 끊임없는 동선의 연결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상하 간의 연결이 외부의 직선계단, 십자가탑의 계단, 건물 내부의 계단 등의 세군데의 계단에서 단절됨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듯 수평적, 수직적인 동선체계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커다란 특징이다.
외부 진입동선이나 내외부의 구분을 없앤 동선체계, 단절없는 수직동선 등, 장황하고 끊임없이 순환하는 동선체계와는 대조적으로 내부공간 특히 예배실 회중석 내부의 종결은 간결하기 그지 없다. 제단의 원형벽면이 그 간결함을 어느 정도 무마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사각형의 평면공간 그것뿐이다. 이렇다할 장식도 없다. 단지, 정사각형 평면부분의 매끈한 노출콘크리트 벽체와 달리 제단 원형벽면은 러스티케이션rustication을 연상케 하는 몰탈뿜칠의 거친 질감으로 마감되었으며, 정사각형 평면을 틀어주는 성가대석이 원형벽면으로 제단에서 연장되고 있을 뿐이다. 단지, 회중석 내부로의 자연광의 도입이 너무 많아 액센트가 없는 공간이 되어버렸음이 아쉽다. 자연광의 효과적인 도입으로 얻을 수 있는 종교적인 신비감이나 위계성과 의도할 수 있는 점이라고 이해할 수는 있을 것이다.
매스의 구성도 명쾌하다. 평면적으로 직사각형과 반원형의 상호관입에 의하여 구성되는데, 전체적인 매스의 구성은 기울어진 직육면체 매스를 반원형의 매스가 받쳐주고 있는 형상이다. 기울어진 직육면체에 의하여 회중석 내부의 방향성과 두 개 층을 가능하게 하는데 이것은 넉넉치 않은 공사비 때문에 비롯된 아이디어라는 것이 설계자의 설명이다. 가능한 대로 공간을 줄이려고 노력하다 보니 세단 부분의 층고를 줄여야 했으며. 그래서 지붕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고, 기울어진 지붕과 직각을 이루는 벽체를 기울이다 보니, 전체적으로 앞으로 기울어진 직육면체의 매스가 형성되었고, 기울임 때문에 생기는 시각적 불안감을 직립한 반원형의 입체를 관입시킴으로써 조절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매스의 구성이 명쾌함을 느끼면서 건축설계시에 각각의 요소나 어휘들에 개연성을 부연하는 작업이 대단히 중요한 만큼 어려운 일임을 상기하게 한다.
강정교회의 특징 중 하나는 색채의 사용을 극히 절제하여 결과적으로 요란하지 않은 무채색의 건축이 되었다는 것이다. 유채색은 십자가와 철제난간 등 몇 군데의 철제부분에서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노출콘크리트의 색채, 몰탈뿜칠 부분에는 안과 밖으로 회색도장으로 마감하고 있으며, 회중석 뒷면의 목재패널도 회색에 가까운 톤을 사용하고 있다. 강조하고 싶었던 회중석 입구부분도 은분으로 강조하였을 뿐 채색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무채색의 사용으로 인하여 강정교회는 그 자리에서 오래 있었던 물체와 같은 이미지를 갖게 된다. 마치 세월의 먼지를 뒤집어 쓴 것과 같이 자신을 과시하려 하지않는 겸허자와 같이 말이다.
앞에서 지적한 내용들에는 고집스런 원칙이 계속되고 있다. 안과 밖이 다르지 않게 하고, 위와 아래를 구분하지 않으려고 한 점이다. 안과 밖을 연결시키고 구분을 없애 막힘없이 순화시키려 노력하고, 한 벽체의 질감표현을 내벽과 외벽을 동일하게 처리하여 안과 밖이 다르지 않음을 의도하고 - 예를 들면, 원형 제단부분의 분위기를 손상시키고 있을 정도로 이 원칙에 철저하고자 하였다. - 또 세곳에 계단을 두어 수직동선을 어느 곳에서나 이루어지게 하였으며, 안과 밖이 다르지 않고자 하는 마음이 매스의 구성까지 명쾌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 원칙의 생성과정이나 의미에 대해서 필자로서 알 수는 없겠으나, 설계자 김재관 씨가 제주행 비행기를 70여회나 타는 열정을 보일 만큼 이 작품의 완성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기 때문에 더욱 이 원칙을 고수하고자 노력하였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건축과정에서 수많은 건축주들과 대화를 시도하고, 수많은 시공기술자들과 함께 실험하였던 것이리라. 그래서 강정교회에는 설계자의 원칙과 건축주, 시공기술자들의 충돌과 타협이 보이며, 그런 과정에서 건축에 묻어난 체취와 자국들이 보이는 것이다.
건축은 어떠한 용도에서든 인간을 위해서만 존재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그러한 건축에서 인간을 보아야 한다. 한 건축의 곳곳에서 인간의 정신과 체취가 스며있고, 인위적인 제스처와 자국들을 들추어 볼 수 있어야 한다. 건축을 비평하는 일도 건축에서 인간을 찾아내려는 시도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 자체도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가장 인위적이라 할 수 있는 건축도 자연이라는 커다란 맥락 안에서 마치 자연의 일부인 양 제자리를 잡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월간 C3 Korea 0105 No 201.2001 - 양상호 /탐라대 교수)
무채색 노출콘크리트로 빚어진 교회
"하나님이 처음에 만물을 창조할 때에는 모든 것이 선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손이 닿으면서 모든 것이 타락한다." 라고 장 자크 루소가 말한 바 있다. 우리네의 경험에 따르면, 새로운 건설이라는 것은 언제나 고요의 정적을 깨치는 것이요, 순수하던 곳을 오염시키는 작업이며, 자연 고유의 평화와 아름다움을 훼손하는 일이었다. 웬지 모르게 제주는 우리나라 어느 곳보다도 아름다워야 할 땅인듯 싶다. 그런데 사실 서귀포시를 방문해 보면 여느 한국의 소규모 도시와 아무런 차이가 없는 건설의 허망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근대화의 흔적 또는 관광지라는 사실은 우리들 아름다운 추억의 전경을 자주 앗아가기만 했지, 진정한 미학적 가치로서의 풍요와 새로움은 전혀 가져다주지 못하였다.
그릇된 도시 전경의 책임으로, 근대화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근거 없고 유치한 인습과 풍토성의 교묘하고도 무분별한 반복에 있다. 제주의 돌담집, 이것은 물론 당대에는 섬지역의 삶을 적절하게 담아내었던 것이고, 빛으로 충만한 고딕의 수직적 상징성은 중세교회의 요구에 잘 부응한 것이었다. 그러나 무수한 재료를 남발하여 덧댄 제주의 수많은 건축물들은 진정한 풍토적 분위기나 전통의 향기를 지니고 있다기 보다는 그 박제된 껍질만을 부여잡고 있다.
우리 주변의 수많은 교회당들을 보면, 그 또한 수백년 전 쓰러져 간 고딕성당의 박제된 모습만들 흉내내고 있지 않는가, 오늘 작지만 당찬 제주 강정교회의 건축을 통하여, 비록 미미한 건축적 개념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인지는 모르나 중대한 프로테스탄트 교회윤리의 한 단편을 발견할 수 있다.
노출콘크리트의 순수함이 우선 아름답다.
제주 강정교회(김재관 소장/무회건축연구소)는 여러가지 수준있는 건축적 가치들을 지니고 있지만, 그 건축물에 사용된 재료에 대한 언급 하나만으로도 한국 교회건축의 사치스럽고 졸렬한 풍경을 치료하는 쓴 양약이 될 수 있다. 이 교회는 노출콘크리트라는 독특하고도 강렬한 재료로 첫인상 지워진다. 교회에서는 자칫 흉물스런 콘크리트 덩어리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있었지만, 완성된 지금은 모두가 그 새로운 순수성의 가치에 즐거워하고 있다.
사용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담임목사 최공칠 목사님의 증언은 이런 경우에 아주 유효하다. "처음으로 노출콘크리트 벽면의 거푸집이 떼어지던 날, 교인들의 실망스러운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물론 나의 마음에도 구멍이 뚫려버렸다. 구멍이 난 벽면, 자갈과 모랫발이 보이는 부분들... 이 공법을 지속할 것인가 하는 오랜 격론이 지나간 후에야 다시 공사가 재개되어 완공을 보게 되었다. 물론 외부인들의 경우 "다 끝난 거예요? 페인트칠 안합니까?"라면서 여전히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교인들은 대부분 이미 노출콘크리트 공법에 세뇌 당해버렸다. 많은 이들이 콘크리트 예찬론자가 되었고 건축에 대한 심미안을 갖게 되었다.... 나는 이제 치장되어진 어떤 건물을 봐도 눈에 차지 않는다. 콘크리트면을 보고 있노라면 바라볼수록 좋아지는 순수한 자연미에 끌리게 되고, 거기에서 발산되는 어떤 "힘"에 압도당하고 만다. 마치 화장하지 않은 여인의 순수한 얼굴 같다고 할까."
노출콘크리트 공법의 가장 우선적인 가치는 이같은 순수성의 효과에 있다. 한국은 물론 유럽과 일본에서도 수많은 현대 건축가들이 이 재료로 건축해 보고싶은 욕심 - 비록 내외부의 치장비용을 절약할 수도 있으나 깨끗한 콘크리트면을 얻기 위하여 아주 섬세한 시공을 요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많은 인건비와 비용이 든다 - 을 갖는 것은 불필요한 치장을 제거한 채 일필휘지로 그의 조형미를 드러낼 수 있는 이 재료만의 고유함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19세기까지 공장과 댐 건설에서나 사용되던 산업재료용 거친 콘크리트에 새로운 역할을 부과한 것은 프랑스 현대건축의 거장 르 꼬르뷔지에라는 건축가에 의해서이다. 그는 절제와 내핍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도미니크회 수도원 건축에 이 거칠고 노골적인 재료를 전격 도입하여 위대한 걸작을 만든 바 있다. 그 이후 이 재료는 오늘날까지 동서양을 무론하고 여전히 파급되고 있다. 이 재료가 갖는 가치는 이처럼 기교와 가식을 과감히 단념한 진실과 순수함의 미학에 있다. 사실 노출 콘크리트로 지어진 교회는 그 재료가 뿜어내는 상징만으로도 이미 절제와 겸허함을 묵묵히 웅변하고 있는 셈이다.
잿빛 노출콘크리트의 자연미
강정교회의 건축적 가치를 재료의 상징성만으로 평가한다면 우리는 너무 단순한 방문객이다. 왜냐하면, 도열하여 선 은빛 기둥들의 의식적 효과, 태양 아래에서의 잿빛 벽면이 빛과 그림자와 더불어 빚어낸는 조형의 다양함, 거칠게 마감되어 매달린 무채색 원형 볼륨의 육중함, 그리고 외부의 순례적 경사로를 오르며 바라보게 되는, 푸른 하늘 배경으로 서 있는 종류의 경건한 모습이 우리들의 옷깃을 여미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경건한 행로의 절정은 ㄱ자로 꺾인 입구 캐노피를 통과하여 교회당 내부로 진입하였을 때이다. 영원한 신의 은총의 상징인 빛은, 거칠고 무거운 잿및 벽면에 떨어지면서 무대를 밝게 변화시키고 현란하기까지 한 장려함을 연출하는 것이다. 사치로 영광을 꾸미고 거대함으로 권위를 과시하며 편리함으로 능력을 드러내는 오늘의 세태 속에서, 이처럼 교회에서 사용된 겸허하고 소박하며 거친 노출콘크리트는 정말 아름답다. (목회와 신학, No 160..20029 - 이은석 /경희대 교수)
도시의 표정을 바꾼다.
산업혁명은 철을 다량생산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전에는 꿈에도 꾸지 못하던 건축 구조물들이 탄생했다. 프랑스 건축가 구스타프 에펠(1832-1923)은 파리의 상징 가운데 하나인 에펠탑을 설계한 인물이다. 300m가 넘는 이 철구조물은 찬사와 거센 반대를 동시에 받았다. 반대 이유는 당시 대리석 조각에 익숙해 있던 건축가들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축에서 고정틀의 파괴는 새로운 창조를 가져온다. 서귀포시 강정동에 가면 외딴 나라에서 온 듯한 아주 낯선 건축물을 만나게 된다. 강정교회(설계 무회건축. 대표 김재관. 98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입선작)는 첫 눈에 "교회 갖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늘 우리가 보아온 서구식의 교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껏 우리나리의 교회양식은 서양의 것을 그대로 빌려왔다. 교회건축은 정신을 담고 있어야 하는데, 그보다는 모양 닮기에만 치중하는 그런 양식을 강정교회는 거부했다. 무회건축은 회합, 커뮤니케이션, 소통장소로서의 의미를 그려넣었다. 강정교회의 내외부는 노출콘크리트를 소재로 썼다. 강정교회가 만들어지자 어떤 이들은 "심하잖아"라는 말을 내뱉기도 했을 정도이다. 이런 평가에도 불구하고 강정교회는 사람들의 인식변화를 소리업이 외치고 있다. 강정교회는 순환체계, 즉 본당으로 이르는 진입과정(동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본당은 2층에 있다. 1층에는 커뮤니티 장소인 "필로티(piloti:건물의 일부분 가운데 벽체없이 기둥만 있는 공간으로 사람들의 통행이 자유로운 공간)"가 있다. 교회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이 공간으로 오게끔 돼 있다. 이 곳은 2층으로 진입하기에 앞서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는 장소이다. 본당으로 향하기 전에 호흡을 가다듬고 자신이 어디로 향할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마치 제주의 전통건축에서 느껴지는 올래의 개념이 들어있다. 강정교회의 필로티는 중성적 공간이다. 기독교와 마을을 이여주며, 외부와 내부를 연결하는 고리이다. 기독교가 진정으로 요구하는 대중과의 접근을 끌어내고 있다. 우리 전통건축에서는 처마가 이런 매개역할을 맡았다. 한마디로 강정교회는 공간이 중심이며 소통체계에 초점을 두고 설계된 작품이다..... (제민일보, 13.02.2000 - 김형훈 / 제민일보 기자)
강정교회 이야기
"1962년 충북 옥천 무회부락 출생, 현재 무회건축연구소 소장"
자신의 약력을 적어 보내달라는 요청에 날아든 서너줄짜리 팩스가 장광설을 기대했던 기자를 잠시 당혹스럽게 한다.
7년여 동안 맥건축에서 실무를 익히다 독립하여 무회건축연구소를 개소한 후, 지금까지 아파트, 근린생활시설, 주택 등, 크고 작은 몇몇 프로젝트를 설계한 바 있는 김재관 씨가 잡지를 통해 작품을 소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제주도에서도 거의 끄트머리에 해당하는 서귀포 한 마을의 교회를 그가 설계하기 시작한 것은 1996년 가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다른 이에 의해 설계가 어느정도 끝난 상태에서 그는 이 교회의 성전 건축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여기에 뚝심있게 뛰어들어 새로운 설계안을 제시하였고, 그것이 채택되어 설계를 맡게 된 것이다.
교회에서 요구한 것은 교회가 감당해야 할 대사회적 기능들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공간을 만들어 줄 것과 무엇보다도 젊은 청년들을 위한 교육시설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설계자는 어떤 것도 모방하지 않은 디자인을 가지며, 모든 불필요한 치장을 배제한 순수한 아름다움을 가진 교회를 설계하겠다는 기본 방향을 설정하였다.
이런 기본 방향 속에서 노출콘크리트는 치장을 배제한 순수한 아름다움을 담아낸다는 설계자의 의지를 더욱 공고히 해주었다. 더욱이 이는 평당 180만원이라는 빡빡한 예산을 맞추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콘크리트에 페인트칠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교회측에 처음 이야기했을 때,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다. 콘크리트의 맨얼굴을 그대로 둔다는 것 자체가 이들에게는 파격이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교회가 그러하듯이 이 교회 역시 성전건축을 위해 오랜 시간, 거의 20여년을 노심초사하며 준비해 왔다. 그렇게 엄청난 일이고 보니 교회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을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교회를 설계해 본 건축가들은 대부분 혀를 내두르며 교회설계의 어려움을 토로하곤 한다. 무엇보다도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로 구성된 건축주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것에서 오는 어려움 때문일 것이다.
강정교회의 경우에도 처음에는 노출콘크리트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던 교회관계자들이 많았다. 이들의 반응에 대해 김재관 씨는 코팅합판을 거푸집으로 사용하면 벽면이 "대리석(?)"처럼 나온다는 말로 교회관계자들을 설득하기에 이르렀다. 어느 정도 과장까지 섞어가며 이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은 교회건축에 대한 설계자 자신의 확신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무엇도 더하지 않은 그 모습 그대로 보여질 때 그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며, 그러한 모습으로 이 교회가 하나님께 드러지기를 바라는, 그래서 이 교회에서 예배하는 이들도 그러한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건축가 자신의 개인적인 신앙고백이기도 했다. 교회측은 이러한 건축가의 의도를 차츰 이해하게 되었다. 설득 끝에 교회의 동의를 얻게 되었는데 교회측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따르게 된 것이 아니라, 노출 콘크리트의 장점을 이해하게 되면서 이를 흔쾌히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협의와 시도 그리고 검증 작업을 반복하면서 교인들과 건축가는 하나가 되었고, 필요한 일이 있으면 동참하기까지 했다. 일례로 하루는 데크의 목재바닥을 갈아내는 작업을 해야 했는데, 목사님이 "자, 내일은 바닥을 가는 공사가 진행되겠습니다. 시간이 있는 분들은 함께 나오셔서 일을 도웁시다"라고 하자 많은 교인들이 비지땀을 흘려가며 이 일에 동참했다고 한다. 시골의 작은 교회이니까 그렇게 팔 걷어붙이고 함께 도울 수 있었던 것이라고 그렇게 쉽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라는 집단이 그다지 강제성을 띠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억지로 시킨다고 마음에도 없는 일을 했을 리는 만무한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이 교회가 건축가와 건축주인 교회관계자 및 교인들이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완공될 수 있었던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좋은 예다.
결과적으로는 노출콘크리트와 부분 시멘트 뿜칠 그리고 식당 내벽은 페인트칠을 하는 것으로 마감하여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특별히 식당 내벽을 칠하게 된 것은 식당이라는 곳은 예배를 마치고 내려온 교인들이 함께하며 한 주간의 삶을 서로 이야기하는, 나눔과 교제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라는 점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당은 어떤 장소보다 밝은 분위기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교회측의 요구였고 이를 수용한 것이다.
진입로에서 시작하여 예배당에 이르기까지 다소 길게 느껴지는 동선은 이 교회공간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요소이다. 효율성의 면에서 볼 때 다소 긴 동선에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교회라는 공간이 갖는 특수성 측면에서 본다면 그 자체로 충분한 설명이 된다. 즉, 예배처소로 가는 이가 이와 같은 과정적인 공간을 거침으로써 조금씩 마음을 가다듬고 예배드리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몇 단계를 거쳐 점진적으로 진입하게 하는 방식을 취한 것에서 한국전통건축의 면모가 느껴지기도 한다.
교회가 완공되고 오랫동안 교회 한 켠에 버려져 있던 교회종도 다시 제자리를 찾게 되어 입당예배가 있던 날 모두 함께 그 종소리를 들으며 기뻐할 수 있었다. 김재관 소장은 "설계를 해서 그것이 건축으로 실현되는 것을 보는 것은 마치 축제에 참여하는 것과도 같다" 라고 말한다. 이는 그렇게 고대하던 공간을 얻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 기뻐하는 사람들 속에서 느끼는 감격같은 것을 표현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한 축제의 장의 제공자가 된다는 것, 건축가의 작업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월간 C3 Korea 0105 No 201.2001 - 정효정 /건축과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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