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상 (The Lord's Table) 
회중의 가운데 놓여진 성찬상은 매주 신앙 공동체 내 주님의 임재를 시각적으로 상징하고 있다. 이러한 그리스도 임재의 상징은 또한 그리스도께서 세우셨고 (inaugurated), 매 주님의 날 식탁을 중심으로 모이고 있는 이 신앙 공동체의 본질에 관해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 E. A. Sovik은 이 식탁이 (the Communion Table) 교회라는 가정의 상징이라고 말한다. 가족이 함께 둘러앉는 식탁이야 말로 식구들 간 하나됨의 가장 힘 있는 상징물이 아닌가? 이처럼 성찬상을 중심으로 (around the Communion talbe) 우리가 나누는 식사는 우리에게 주님의 가정으로서의 일치감과 연대감을 준다. (E. A. Sovik, 'A Portofolio of Reflections on the Design of Northfield Methodist Church,' Your Church 13 [Sept.-Oct., 1967]: 53-54). 

성찬상은 벽에 붙이지 말고 떼어놓아야 한다 (free-standing). 집례자가 상을 앞에 두고 집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개혁 교회는 (Reformed Christians) 성찬상이 (Communion table) 식탁이지 (Table) 제단이 (altar)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따라서 성찬상은 식탁처럼 보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상은 성찬 용기들과 예배서를 얹어 놓을만한 넓이는 되어야 할 것이다. 길이와 넓이는 놓여질 공간과의 적절한 비율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6피트에서 8피트 정도면 충분하리라 본다. 높이는 대개 36인치에서 42인치 정도 되면 적절하리라. 가장 좋은 재료로 만드는 것이 좋다. 

식탁은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자 (movable). 주님의 만찬을 집례할 경우 다양한 위치에 놓을 수 있을 것이며 상이한 상황과 경우에 융통성 있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식탁과 그 주변 성구에 예술적 차원이 가미될 경우 이 예술품이란 것이 성찬예식을 돕는 것이어야지 회중의 관심과 초점을 뺏거나 산만하게 하는 것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예술적 성찬 용기들은 특정 예배절기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거나 어떤 거룩성에 대한 느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식탁과 그 셋팅은 잔치의 기쁨과 즐거움을 불러 일으켜야 될 것이다. 유카리스트 (성찬)라는 것이 “하나님 백성들의 기쁜 잔치상” 아닌가? 

식탁은 (Table) 강단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이 시각적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stand in equal prominence to the pulpit). 강단과 동일한 재료와 디자인으로 만들어질 경우 이는 성경 속의 말씀과 (the Word in Scripture) 성례 속의 말씀 (the Word in sacrament)이 동일하다는 뜻을 함의하게 될 것이다. 조명의 중심에 놓여질 경우 회중들의 주목을 끌 수 있어 좋은 면도 있으나 혹시 지나쳐 그로 인해 회중이 식탁으로부터 거리감을 느끼거나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면 이는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식탁은 회중들이 언제나 그 전체 모습을 다 볼 수 있는 곳에 놓여져야 될 것이다. 20세기 전환기에 지어진 많은 교회들 안에서 성찬상은 시각적으로 숨겨있는 편이다. 식탁이 강단 앞에 회중석과 같은 평면에 놓여진 경우 중앙 복도를 따라 내려갈 경우에만 그 존재를 알수 있게 된다. 가끔 이 성찬상은 헌금바구니와 꽃이 올려져 있어 성찬상 본디의 용도와 상징적 의미가 퇴색하거나 혼란스러워지게 된다. 

낮은 단을 설치해 그 위에 성찬상을 놓을 경우 성찬상은 회중의 머리 바로 위쪽으로 보이게 된다. 회중석이 긴 직사각형이 아니라 반원형으로 꾸며진 경우 한 단 정도 높이면 성찬상을 회중들의 가시권 안으로 올리는데 충분하리라 본다. 세 단 이상은 할 필요가 없으리라 본다. 이 경우 성찬상은 회중으로부터 고립되어 “거룩한 섬” (“holy island')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한 단 이상일 경우 계단은 넓고 쉽게 출입이 가능하도록 (inviting) 만들어져야 된다. 만일 강단, 식탁 그리고 세례반이 예배 공간의 전면부에 배치될 경우 계단은 양쪽 벽과 벽 사이에 걸쳐 길게 만들어져야 될 것이다. 식탁이 회중석 중간까지 나가게 된다면 이 때 계단은 이 단의 삼면을 둘러 만들어져야 될 것이다. 

성찬상이 회중들의 식탁이라는 점이 확실히 표현되어야 한다. 성찬상을 에워싼 난간은 필요 없으며 회중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accessible) 열려있어야 한다. 식탁은 회중들이 보기에 단 위가 (on a stage) 아니라 저들 한 가운데 (in its midst) 놓여져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배치되어야 한다. 회중이 주변에 앉을 수 있도록 회중석 중앙에 놓여진다면 이때 성찬상이 식탁이라는 것은 분명히 경험될 것이다. 식사 행위에 참여하고 있다는 강한 느낌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식탁 뒤에서 집례하는 목사는 저들 중에 임재하신 주님을 상기시켜 줄 것이다. 식탁 주변의 공간은 사방에서 접근이 가능하도록 넉넉하고 여유로와야 될 것이다. 회중들은 식탁과 집례자 가까이 있는 것이 좋으나 지나치게 가까울 경우 성찬 공간이 비좁아지게 될 것이다. 

회중들이 식탁으로 나와 떡과 포도주를 받는다면 의자에 앉은 채 주어지는 것을 수동적으로 받는 것보다 더 좋을 것이다. 이 경우 수찬자의 수찬 선택 의지가 보다 분명히 표현될 수 있지 않겠는가? 식탁 주변에 모일 때 회중은 저들이 하나님의 가족에 속해 있다는 감을 잘 느끼게 될 것이다. 

성찬상 이용 방식과 성찬성례 이해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오직 성찬 예배 (the eucharistic liturgy) 때 사용되는 것들 - 성찬 그릇들, 떡, 포도주, 집례서 - 만 식탁 위에 올려져 있어야 한다. 꽃, 십자가 혹은 펼쳐진 큰 성경책 같은 것들이 올려져 이 식탁이 마치 거룩한 것들을 올려 두는 제단 같은 모습으로 회중들의 관심과 이해를 오도할 경우 식탁으로서의 성찬상의 기본 이미지는 흐트러지고 사라지게 될 것이다. 초는 식탁 옆 어딘가에 세워 놓으면 된다. 꽃도 다른 곳에 놓으면 된다. 십자가는 식탁 뒤 벽에 걸거나 식탁 위쪽 공간에 천장으로부터 매달아 늘어뜨려 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성경은 그것이 읽히고 해석되는 강단과 시각적으로 관련지어 배치해 놓으면 될 것이다. 

헌금 바구니는 성찬상과 별도의 나름의 자기 자리에 위치해야 한다. 성찬상 위에 올려질 경우 성찬 사크라멘트의 본질과 성격이 혼란스러워진다. 사크라멘트를 통해 선포되는 사실은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의 응답에 우선하며 그분이 주도권을 (initiative) 쥐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이 점이 흐려져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제구대나 성찬상 옆 선반 같은 곳에 헌금 바구니를 두는 것이 낫다고 본다.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일을 제외한 나머지 예배 순서는 성찬상에서 (Lord's Table) 진행하는 것이 좋다. 이는 캘빈 식이다. 성찬상은 선포의 장소인 강단보다 기도에 더 적합한 곳이다. 대안이 있다면 죄의 고백과 회중의 기도를 (the prayers of the people) 회중의 한 가운데서 진행하 는 것이다. 이러한 실천은 이것이 회중들의 기도라는 사실을 분명히 나타내는데 효과적이다. 

성찬상은 그것에 적절한 존경심으로써 다루어져야 한다. 성찬상이 숭배의 대상이거나 어떤 타부는 아닐지라도 그것은 분명 존경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이는 성가대 연습때 코트를 벗어 놓거나 악보를 널어 놓는데 사용되면 안 된다. 교회학교 교사들이 교보재를 올려놓는 곳, 재정 위원들이 헌금 계산하는 곳, 투표용지를 세는 곳이 아니다. 이는 상이며 하나님의 은총에 가득한 사역의 징표를 보여 주는 곳으로 지정된 곳이다. 성례 공간에 대한 존경심은 사크라멘트 자체의 중요성과 의미에 대한 깊은 깨달음에서 비롯된다. 성찬상은 그것이 예배적 삶의 중심으로서의 이 식사를 단순하게, 선명히 그리고 일점 애매함 없이 표현해주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 임재의 징표로서 우리 중에 존재하게 될 것이다. 

요약
성경의 봉독과 해석, 세례 그리고 주님의 만찬은 그리스도교 예배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들이다. 이 세 개의 행위를 중심으로 교회는 모든 기도와 찬양을 배치해 놓았다. 각각의 행위가 교회의 삶에 중심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강단, 세례반 그리고 식탁은 여러 상징물 중에서도 각별히 부각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교 예배의 본질이 곡해되거나 혼란스러워짐 없이 분명한 모습으로 드러나기 위해 각각의 예배 중심은 충분한 숙고를 거쳐 디자인 되어야 한다. 각 공간은 그 자신만의 독립적이고 비어있는 공간을 필요로 한다. 어떤 한 예배 중심만이 독단적으로 다른 것들의 의미를 압도하거나, 부정하거나 혹은 왜곡해서는 안 된다. 강단, 세례대, 성찬상의 위치는 말씀, 세례, 성찬 간의 일치와 상호의존성 뿐 아니라 이들 각자가 가지는 독특성과 독립성을 표현할 수 있도록 정해져야 된다. 한 개인은 세례를 통해 교회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게 되며 이후 끊임없이 성경과 성찬을 통해 양육되어야 한다. 예배 공간은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표현할 수 있어야 된다. 

이 세 예배 센터들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우리의 성장을 도우며 우리로 신앙의 본질적인 것에 뿌리내릴 수 있게 해준다. 저들이 돕게 될 성례적 행위의 한 부분으로서 이 공간적 예배 중심들은 우리로 복음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우리를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으로 모양 잡아들이고, 우리로 그리스도교 예배의 본질을 시야에서 놓치지 않도록 해준다. 이 공간적 중심들이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들이 주의 깊게 디자인되고 리터지 행위에 의해 빚어지고 (shaped), 견고한 신학에 근거되며 역사적 전통과 연속성을 유지할 때 가능해진다.


이 글은 Harold Daniels, 'Pulpit, Font, and Table,' Reformed Liturgy and Music 16:2 (Spring 1982): 4-6, 14.를 번역한 것으로, 그 네 번째 글입니다.